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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정말로 사이를 좋게 만드는가?

by 노엄Jr. 2020. 2. 17.

원래 형제는 싸우면서 자란다.

 

'싸움'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싸움'이 서로를 알게 해주는 긍정적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표현들은 일반화된 표현이다. 그렇다면 싸움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는 무엇일까.

 

싸움은 감정이 격해질 때 일어난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기 바라는데, 그러지 않고 본인 주장만 늘어놓을 시 감정은 더욱더 격해진다. 감정이 상한 상태, 즉 이해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언행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에서의 표현이 되며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

 

'숙고'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우리의 언행은 좀 더 직설적이고, 자유로워진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 되는 것이다. 싸움의 긍정적 효과는 이 고속도로를 통한 "정보"의 전달에 있다. 감정이 상하는 것은 싸움의 비경제적인 효과이다.

 

따라서 싸움이 경제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싸우는 양측이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의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메타인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 본인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본인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 본인이 불편한 점을 정확하게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거나
  • 자신이 왜 불편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면

 

우리의 말은 단순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인신공격으로 한정된다. 메타 인지력과 자기 표현력이 부족한 상태로 서로 인신공격을 하다 보면, 정보의 전달은커녕 서로의 거리가 더 멀어질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져준다'라는 표현은 일단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상대방의 관점과 표현 방식 안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숙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기 귀찮아서 그냥 네 말이 다 맞다 하고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는 행위가 '져준다'로 혼용되기도 하나, 이것은 성가신 일을 피하려고 하는 회피 본능에 불과하다. 이때 인간은 "어차피 말해도 몰라"라고 상대방의 이해력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표현력의 열등을 감추려는 본능이 있다.


현재 사회는 점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교육의 전문화와 세계화로 인해,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형태로 빠르게 변화되어가고 있다. 바로 옆집이라고 해도 나와는 다른 것을 먹고, 다른 것에 흥미가 있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다르다. 옆집사람이 사용하는 한국말은 내가 쓰는 한국말과 문법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외국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만난 두 사람이 싸움을 통해 사이가 좋아지려면, 예전의 사회보다 고도의 메타 인지력자기 표현력, 그리고 상대방이 쓰는 언어와 표현을 관찰하고 빠르게 습득하는 통찰력까지 요구된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이 전혀 다른 문화권 출신이라면 서로의 문화에 대한 지식과 역사적 인식의 이해, 그리고 사회과학의 학문적 이해까지도 요구될지 모른다.

 

어린 두 형제는 대부분의 경우 같은 가정, 같은 문화 안에서 자란다. 이 둘은 이미 같은 배경을 공유함으로써, 싸움을 통해 메타 인지력과 자기 표현력을 익혀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경우가 오히려 특수한 경우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도 너무 다른 세상을 살아가며 더 이상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구조의 지금 사회에서의 싸움은 오히려 부정적 감정만 부축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의 부부싸움은 서로 책을 옆에 싸아두고 엄숙하게 이루어지는 토론 같은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서로 편지라는 이름의 논문을 써서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형태도 등장할지 모른다. (이건 이미있다) 지적 노력을 기피하는 꼰대들은 이런 현상들을 보며 살갑지 않다고 비난할 것이고, 그들은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진정한 의미로 서로의 정신에 다가가며 더욱더 살가운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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