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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by 노엄Jr. 2020. 6. 9.

노자는 언어에 의존하여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를 이롭게 할 수도 없고, 그에게 해를 끼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인지과학의 프레임의 개념에 해당하는 부분을 당시 존재했던 표현으로 말하려고 했다.

 

언어에 의존하여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을 '대처할 방도가 없는 사람'이라고 거칠게 표현하였다. 노자 또한 프레임에 최대한 의존하지 않고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혹은 글 쓰기전 노자가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대화하며 너무나 큰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지도..)

 

현재 세상에서 '가르친다', '알려준다'(이하 가르친다)란 개념의 내면에는 '강요'와 '억압'의 부정적 은유가 담겨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여태껏 인류의 '교육'이라는 개념이 어떠했는지 잘 알려준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행위는 다음의 두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이루어 질 수 있다. 

  1.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일 것
  2. 서로 비슷한 문화에서 비슷한 표현방식을 배웠을 것

이 두가지가 충족되면 이미 '경험'으로서 알고 있는 지식을 '말'을 통해 '정리'시켜 줄 수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다. 이 방법의 포인트는, 가르침의 대상이 이미 경험을 통해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가르침이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고 '강요'와 '억압'의 개념 쪽이 더 강하게 활성화된다. 이 것이 우리가 어떠한 가르침을 개인화(personalize)하여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개념은, 말로 아무리 정리하여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친다'란 말의 은유를 코페르니쿠스 전환(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이 배우는 과정을 분해해보자

  1. 무언가 경험을 한다 (말을 듣는 것도 포함)
    - 이때 경험은 선택적이다. 사람은 그 상황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받아들인다.
  2. 개념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3. 정리한 개념을 검토하여 저장한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것은, 하나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양질의 설명이 가능하다면, 양질의 경험을 제공해준 것이 되며, 상대방이 해당 경험을 채택하여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이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선택 달렸다. 강요로 무언가를 억지로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요로 인한 선택도 있을 수는 있다. 이 방법은 그럴만한 환경을 상대방에게 제공해야 한다. 협박을 통한 공포가 될 수도 있고, 미래의 불투명성에 대한 협박이 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상대방이 충분히 상황의 불확실성에 공포를 느껴야만 가능하다. 공포심이 없고 도전정신이 강한 상대에게 이 방법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항상 사람을 만난다. 서로 양질의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선 '강요'와 '억압'을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이 불가피하다. 당신은 상대방을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친다', '알려준다'라고 표현하면 '강요'와 '억압'의 은유를 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항상 사람을 가르친다. 상대방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말은 부가적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항상 무언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말'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상대방이 무언가 말을 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무언가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뿐이다. 상대방은 당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때때로 TMI(너무 많은 정보)가 될 수는 있다. 너무 많은 정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를 오히려 제한하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계속하는 상대에게는 양해를 구하는 것도 서로의 양질의 경험을 존속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상대방과 멀어지는 방법이 아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주고, 말이 안 통하는 상대는 스트레스는 늘어나지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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