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rsonal Stories

기성 세대의 문화 중... 발췌

by 노엄Jr. 2021. 8. 15.

 

며칠 전 딸의 돌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비토가 사진관이라는 곳이었는데, 그냥 구글 검색에서 가장 느낌 있는 사진을 찍는 곳으로 찾아갔다. 마음에 여유가 많지 않아 깊게 고려하지 않고 느낌으로만 선택한 곳이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하자마자 사진사 아저씨는 본인은 하루에 한 가족밖에 찍지 않는다 라며 그것이 마치 독보적인 것 마냥 어필을 시도했다. 한국에서 접한 문화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고해보면, 그것이 독보적인 것이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사진관이라면 예술적인 감각 추구나 장인 정신의 실천보다는 양을 중심으로 한 이율 극대화를 노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달랐다. 뭔가 나와 동질감을 느꼈다. 그 동질감은 나에겐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동조할 수 있었지만, 사진사 아저씨는 본인에게 동조하는 나를 특이하게 보았다. 내 주변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지만, 사진사 아저씨에겐 그렇지 않나 보다 했다. 사진사 아저씨도 뭔가 느끼셨는지 중간부터 이상하게 잘 대해 주시기 시작하면서 본인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원래 디자인 회사의 능력 있고 인정받는 PD였고, 디자인 회사를 세워서 사업을 한적도 있고, 결국엔 사진관을 열어서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나도 관심이 있는 내용이 많아서 귀 기울여 듣고, 궁금한 부분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게 뭔가 좋은 감정을 이끌어 냈는지, 85만 원짜리 촬영 플랜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시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이 소요될 예정이였던 우리의 프리미엄 플랜이, 촬영 중간부터 3시간 반에 걸친 리스트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가의 플랜으로 변경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사진작가님이 더 힘드셨겠지만 편하게 촬영당하는 사람조차 고된 스케줄이었다. 사진사 아저씨는 구구절절 계속 자기 이야기를 했다. 자랑할게 끊임없이 나왔다. 듣고 있는 나도 관심이 가는 내용도 많았다. 마치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 능력 있는 선배들이 끝없이 자기 자랑하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타인의 자랑 이야기가 좋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였고, 그 결과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은 자신이 실패한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그에게 한때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당 내용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정말 배울 점이 많다. 

 

장시간 촬영이 끝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진사 아저씨가 아이패드까지 들고 와서는 자신의 과거 작품을 보여주시기 시작했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정말 센스 있게, 남들보다 우수하게, 남들과는 다르게 표현하려는 코다와리(장인정신)가 느껴졌다. 작품을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었으나, 너무 많았다. 중간에 메이크업하시는 분이 말씀하셨는데, 비토가 사진관은 엄마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인데, 어떻게 아빠가 알고 왔냐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관이 돌사진 전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사진관이고, 다른 사진관들은 다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진사 아저씨가 남들이 본인을 어떻게 따라 하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해주셨다... "저것도 내가 정품으로 구해와서 처음 시도한 건데, 남들은 고새 짭퉁으로 또 따라 하더라고" 등등. 그리고 실은 이 사진관은 3달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촬영이 불가한데, 나는 운 좋게 누가 캔슬해서 예약한 지 일주일 만에 자리가 났다고 한다.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다. 제일 확실하다. 결혼 반지 제작 의뢰도, 게임 제작 외주 작업 의뢰도, 난 그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 가지고 있는 자부심부터 봤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결과물을 얻었다. 사진사 아저씨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랑하는 만큼, 그에 대한 신뢰도도 따라서 올라갔다. 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결과야 뻔하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나올게 틀림없다. 나한테 본인 자랑을 2시간이나 하셨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실력자들이 자기 자랑을 구구절절하지만, 일본, 미국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일본, 미국은 실력주의 사회인 면이 강해서, 타인에게 인정을 갈구하지 않아도, 실력자로서 인정받기 쉽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냥 돌사진 찍는 사진사 나부랭이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여태껏 고생해서 이룩한 것을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누가 대한민국에서 내 성과를 알아줄까?

반응형

'Personal Sto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뭘 해도 잘되는 사람들의 특징  (0) 2022.07.10
윈스턴 처칠  (0) 2022.07.10
꼰대와 빵  (0) 2020.09.10
내 친한 친구가 통일교 신자?  (1) 2020.02.17
책상 정리  (2) 2020.02.17

댓글